‘아리’는 순우리말로 '곱다', '아름답다',

          영어로는 'RE, 다시(again)'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옥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세계에 다시 알리고 싶은 회사의 철학을 담고 있다.


REHANOK Partnetship

아리한옥 부설연구소



아리문화연구소는 삶의 아름다움, 기쁨, 품격을
드높이는 문화 콘텐츠를 연구하는 곳이다.



정한옥연구소는 한옥의 정신과 가치를
연구하는 곳이다.



아리문화연구소를 열며

나는 목수의 아내다. 그리고 도공의 딸이다. 작고하신 아버지는 정목수가 한옥 목수가 된 것을, 같은 장인의 길을 간다며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목수의 아내로 산다는 건, 허구한 날 독수공방이라는 얘기다. 많은 아내들이 잘 모르고 부러워할 땐 그냥 웃고 만다. 나의 독수공방 세월만큼 남편은 바깥잠을 잤다는 말이다. 흔히 '집을 짓고 나면 10년이 더 늙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집짓기에 들어가는 마음고생이 얼마나 고되었으면 이런 말이 다 나오겠는가. 정목수는 집짓기를 업으로 하여 어느덧 20여 년이 되었다. 머리칼은 듬성듬성이며 피부는 늘 햇볕에 그을려 시커멓고, 어느새 말투조차 전국 팔도의 말이 다 섞였다. 그런 정목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보다가 회사일을 함께 시작했다.

 

2022년 겨울에는 지인들과 건축주들을 비롯하여 약 400여명이 회사명 변경공모에 참여하였고, 1.2차 투표를 거쳐 ‘아리한옥’으로 정했다. 그리고 ‘정한옥연구소’와 ‘아리문화연구소’도 연이어 발족했다.


아리문화연구소는 정진영 목수가 한옥 시공에 이미 반영하고 있던 한옥 인테리어를 좀 더 강화하고, 한옥 수출 시 상업공간 인테리어까지 준비하고 있다. 또한, 아리한옥의 사업에 발맞추는 연구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 저술, 강연, 콘텐츠 개발, 문화제 및 문화상까지 꿈꾸고 있다.


아리문화연구소는 나의 오랜 소망의 발현이다. 문화예술인들의 사교장이기도 했던 집은 늘 예술인들로 북적거렸고, 그 속에서 천재 예술가가 될 재능이 없음을 일찍이 절감하게 되었다. 그 뒤 잠재력을 지닌 예술가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했던 소녀는 어언 50대 중반이 되어 그 꿈을 위한 문화연구소를 열게 되었다. 삶이란 참으로 경이롭다!



-아리문화연구소장 김영희




나의 친구 영희에게


"나랑 친구 할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상주에서 전학 온 아이는 운동장에 혼자 어색하게 있었다. 나는 친구들 중 처음으로 이 전학생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난 그때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이 친구가 40년 이상 나의 절친이자 ‘찐친’이 될 것을. 


친구랑 나는 많은 것이 달랐다. 우리집은 아빠가 공무원이라 그 특유의 분위기랄까 그런 게 있었는데 친구네는 예술가 집안으로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또 나는 1남 1녀의 장녀, 친구는 2남 3녀의 막내딸. 물론 친구 밑으로 남동생이 있긴 했지만. 친구는 막내딸임에도 불구하고 장녀인 나에 비해 할 줄 아는 게 참 많았다. 나무 이름, 들꽃 이름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 나무 이름과 들꽃 이름, 그리고 먹을 수 있는 풀과 열매 들을 곧 잘 알려 주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친구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전시와 판매를 많이 하셨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는 각종 녹차와 중국차, 일본 가루차인 말차도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던 한 가지는, 친구는 어린 나이에도 차를 낼 줄 알았다. 친구가 우려주는 녹차를 난생처음 마신 나는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네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고 분위기 또한 독특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마련한 깨끗하고 화사한 모시옷(나의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누라가 진탕 고생하는 옷이 남편에게 곱게 입힌 모시옷이라고 하셨다.)을 입고 다니셨던 친구의 아버지는 성격이 호방하고 풍류를 아는 분이셨다.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아낌없이 사주셔서, 그 집에 가면 특색 있는 책과 물건들이 넘쳐나 읽을거리도 많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도자기를 사러 오는 손님뿐만 아니라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예술가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왕래가 잦아서 친구네 집은 늘 그들의 사랑방과 같았다. 좀 커서는, 친구의 집이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프랑스의 살롱 같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하숙범’과 비슷했다. 친구네 집에는 손님들이 가지고 온, 그 당시 귀하던 먹거리들이 많았다. 친구가 ‘케이크와 바나나가 몇 박스나 들어왔다.’고 부르면 달려가서 맛있게 먹곤 했다. 또한 미식가인 친구의 아버지가 즐기던 멧돼지고기와 같은 특별한 것을 먹게 될 때는 나도 따라가 입을 보태었다. 


결혼한 친구의 큰 언니는 자주 못 봤지만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한 둘째 언니와 일찍이 흙 만지는 재능을 보여준, 4대째 가업을 이어 지금은 부산시 무형문화재 사기장이 된 오빠. 그리고 친구의 남동생과도 친하게 지내며 나에게는 부족한 예술에 대한 영감을 조금씩 채워갔다.


또 친구는 20대 중반에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해서 인생 선배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인간에 대한 궁극적 물음을 찾기 시작했고 거기에 몰두했다. 그 공부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고비 때마다 힘듦과 고통을 완화시켜 주었다. 언제나 힘들 때 위로가 되고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가 이 친구다. 내가 딴 건 몰라도 친구 하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기똥차게 알아봤다니!


그런 친구가 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아리문화연구소가 무엇을 할 지 어떤 행보로 나아갈 지 기대된다. 물론 가시적 성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내 친구가 주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아리문화연구소를 만들기 전에도 몇몇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런 일들이 아리문화연구소로 꿰어질 것이라 본다.



-성미산학교(대안학교) 교사 송혜정















REHANOK Partnership

아리한옥 부설연구소




아리문화연구소는 삶의 아름다움, 기쁨, 품격을 드높이는 문화 콘텐츠를 연구하는 곳이다.


정한옥연구소는 한옥의 정신과 가치를 연구하는 곳이다.



아리문화연구소를 열며

나는 목수의 아내다. 그리고 도공의 딸이다. 작고하신 아버지는 정목수가 한옥 목수가 된 것을, 같은 장인의 길을 간다며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목수의 아내로 산다는 건, 허구한 날 독수공방이라는 얘기다. 많은 아내들이 잘 모르고 부러워할 땐 그냥 웃고 만다. 나의 독수공방 세월만큼 남편은 바깥잠을 잤다는 말이다. 흔히 '집을 짓고 나면 10년이 더 늙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집짓기에 들어가는 마음고생이 얼마나 고되었으면 이런 말이 다 나오겠는가. 정목수는 집짓기를 업으로 하여 어느덧 20여 년이 되었다. 머리칼은 듬성듬성이며 피부는 늘 햇볕에 그을려 시커멓고, 어느새 말투조차 전국 팔도의 말이 다 섞였다. 그런 정목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보다가 회사일을 함께 시작했다.

 

2022년 겨울에는 지인들과 건축주들을 비롯하여 약 400여명이 회사명 변경공모에 참여하였고, 1.2차 투표를 거쳐 ‘아리한옥’으로 정했다. 그리고 ‘정한옥연구소’와 ‘아리문화연구소’도 연이어 발족했다. 


아리문화연구소는 정진영 목수가 한옥 시공에 이미 반영하고 있던 한옥 인테리어를 좀 더 강화하고, 한옥 수출 시 상업공간 인테리어까지 준비하고 있다. 또한, 아리한옥의 사업에 발맞추는 연구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 저술, 강연, 콘텐츠 개발, 문화제 및 문화상까지 꿈꾸고 있다.


아리문화연구소는 나의 오랜 소망의 발현이다. 문화예술인들의 사교장이기도 했던 집은 늘 예술인들로 북적거렸고, 그 속에서 천재 예술가가 될 재능이 없음을 일찍이 절감하게 되었다. 그 뒤 잠재력을 지닌 예술가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했던 소녀는 어언 50대 중반이 되어 그 꿈을 위한 문화연구소를 열게 되었다. 삶이란 참으로 경이롭다!



-아리문화연구소장 김영희



나의 친구 영희에게

"나랑 친구 할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상주에서 전학 온 아이는 운동장에 혼자 어색하게 있었다. 나는 친구들 중 처음으로 이 전학생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난 그때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이 친구가 40년 이상 나의 절친이자 ‘찐친’이 될 것을. 


친구랑 나는 많은 것이 달랐다. 우리 집은 아빠가 공무원이라 그 특유의 분위기랄까 그런 게 있었는데 친구네는 예술가 집안으로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또 나는 1남 1녀의 장녀, 친구는 2남 3녀의 막내딸. 물론 친구 밑으로 남동생이 있긴 했지만. 친구는 막내딸임에도 불구하고 장녀인 나에 비해 할 줄 아는 게 참 많았다. 나무 이름, 들꽃 이름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 나무 이름과 들꽃 이름, 그리고 먹을 수 있는 풀과 열매 들을 곧 잘 알려 주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친구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전시와 판매를 많이 하셨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는 각종 녹차와 중국차, 일본 가루차인 말차도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던 한 가지는, 친구는 어린 나이에도 차를 낼 줄 알았다. 친구가 우려주는 녹차를 난생처음 마신 나는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네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고 분위기 또한 독특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마련한 깨끗하고 화사한 모시옷(나의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누라가 진탕 고생하는 옷이 남편에게 곱게 입힌 모시옷이라고 하셨다.)을 입고 다니셨던 친구의 아버지는 성격이 호방하고 풍류를 아는 분이셨다.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아낌없이 사주셔서, 그 집에 가면 특색 있는 책과 물건들이 넘쳐나 읽을거리도 많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도자기를 사러 오는 손님뿐만 아니라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예술가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왕래가 잦아서 친구네 집은 늘 그들의 사랑방과 같았다. 좀 커서는, 친구의 집이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프랑스의 살롱 같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하숙범’과 비슷했다. 친구네 집에는 손님들이 가지고 온, 그 당시 귀하던 먹거리들이 많았다. 친구가 ‘케이크와 바나나가 몇 박스나 들어왔다.’고 부르면 달려가서 맛있게 먹곤 했다. 또한 미식가인 친구의 아버지가 즐기던 멧돼지고기와 같은 특별한 것을 먹게 될 때는 나도 따라가 입을 보태었다. 



결혼한 친구의 큰 언니는 자주 못 봤지만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한 둘째 언니와 일찍이 흙 만지는 재능을 보여준, 4대째 가업을 이어 지금은 부산시 무형문화재 사기장이 된 오빠. 그리고 친구의 남동생과도 친하게 지내며 나에게는 부족한 예술 에 대한 영감을 조금씩 채워갔다.


또 친구는 20대 중반에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해서 인생 선배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인간에 대한 궁극적 물음을 찾기 시작했고 거기에 몰두했다. 그 공부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고비 때마다 힘듦과 고통을 완화시켜 주었다. 언제나 힘들 때 위로가 되고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가 이 친구다. 내가 딴 건 몰라 도 친구 하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기똥차게 알아봤다니!


그런 친구가 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아리문화연구소가 무엇을 할 지 어떤 행보로 나아갈 지 기대된다. 물론 가시적 성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내 친구가 주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아리문화연구소를 만들기 전에도 몇몇 예술가들을 후 원하고 있으며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런 일들이 아리문화연구소로 꿰어질 것이라 본다.



-성미산학교(대안학교) 교사 송혜정


   ㈜아리한옥 | 대표 정진영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태봉로 361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 한옥문화관 304호
063.562.9871  /  010.7192.9871
www.rehanok.com
rehanok2022@gmail.com

   -

   아리문화연구소 김영희 소장

worldamiii@naver.com
@COPYRIGHT 2023 REHANOK.  ALL RIGHTS RESERVED.






(주)아리한옥 | 대표 정진영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태봉로 361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 한옥문화관 304호

063.562.9871 / 010.7192.9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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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문화연구소 김영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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