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는 순우리말로 '곱다', '아름답다',

          영어로는 'RE, 다시(again)'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옥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세계에 다시 알리고 싶은 회사의 철학을 담고 있다.















Recommendation 

추천사



한옥 관련사업의 

새지평을 열어 갈 것임을 

믿습니다.

따뜻한 봄날, 그동안 한옥의 다양한 현장 경험을 축적 하고 연구에도 힘써온 정진영 도편수가 대표로 있는 '아리한옥'이 새롭게 출발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한옥 건축과 문화재 보수 전문회사인 ‘아리한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정진영 도편수는 현재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산학협력으로 한옥 수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마다하지 않고 강의를 맡아주었고, 명쾌하고 확실하게 가르쳐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수출에도 주력하여 해외 현지에서 한옥을 직접 시공하고 있습니다.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가 한옥특성화 캠퍼스로 발을 내디딜 때부터 같이 고생해 왔기에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사업확장을 응원합니다. 


제가 아는 정진영 도편수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보통, 건축주가 집 한 채를 지으면 10년이 늙어버리고 시공한 분과도 원수가 된다고들 얘기합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가 건축한 한옥마을에서는 건축주들이 공사가 끝난 다음에도 매월 모임을 가지며 감사한 마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진영 도편수는 지금까지 쌓인 기술과 성과를 바탕으로 '아리한옥'을 통하여 국내에 이어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만들어 한옥 관련사업의 새지평을 열어갈 것임을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전북대학교 한옥건축학과 남해경 교수



‘아리한옥’ 도편수 정진영,
“목수는 천직이다”


도편수는 한옥 건축 현장의 총책임자다. 터닦기부터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다 알아야 하고 나무, 돌, 기와 같은 전통적 소재뿐 아니라 신소재도 잘 다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주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건축주가 원하는 집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리한옥 정진영 대표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도편수다. 


어느 문화재 보수 현장, 마루 밑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득득득득’ 혼자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정목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아내 김영희가 묻는다. “땅을 왜 파십니까?” 정목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뜸을 들이다가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땅? 파라니까 파죠.” 


아리한옥 유튜브 영상을 보는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이 짧은 대화가 전부인 영상에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두 사람과 이웃 동네에 살고 있으며 그의 아내인 김영희의 친구다. 그들이 남원으로 이사를 오고 이제 5년 차 친구지만 매우 가깝게 지내어 두 사람의 분위기를 잘 안다. 나는 정진영 대표를 ‘정목수’라고 부른다. 여러 직함이 있지만 목수를 가장 좋아한다길래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 김영희는 정목수로 사는 남편을 늘 지지하고 응원하며 최근에는 문화연구소를 열었다.


사실 정목수는 외국계 큰 기업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한 ‘정과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돈과 명예’가 그의 목표였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일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 경남 하동까지 내려온 중심에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 김영희는 30대 초반에 어린 딸을 데리고 경남 하동으로 먼저 내려갔다. 귀촌하자는 아내에게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고 했던 그였는데, 어느 날 영화 ‘아웃 오브 슈미트’를 보고 생각을 바꿨단다. 회사 임원이 되어 돈과 명예를 얻어도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동은 섬진강의 하류라서 모랫벌과 농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으며 벚꽃길과 재첩국으로 유명하고 귀농지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정목수 부부는 저렴한 농가주택을 보금자리로 구입했는데 집을 처음 본 순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단다. 집을 수리하려고 천장을 뜯자 쥐똥이 서 말이나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시골살이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남편은 일당 5만 원짜리 목수의 보조일을 시작했고, 아내는 딸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녹차밭이 많은 곳이니 찻잎도 따러 다니고 직접 차도 만들어 판매도 하고 식당일도 거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목수일, 그런데 정목수는 그 일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뒷간목수’로 불리는 목수였다. 그의 유전자 어딘가에 망치질 소리, 자귀질 소리가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당 5만 원으로는 한 가족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목수들의 공동 숙소 한쪽 구석에서 이어폰을 끼고 독하게 공부를 시작 했다. 술과 담배의 유혹도, 텔레비전의 유혹도 뿌리치고 오롯이 책 속에 파묻혔다. 그 결과 ‘문화재수리기능자(대목)’라는 자격증을 따냈고 일당 15만 원짜리 목수가 되었다.

그 후 도목수를 거쳐 도편수가 되었고 2017년에는 주식회사를 차렸다. 정대표는 3D 프로그램도 독학으로 익혔다. 현장 방문 시 건축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3D 도면을 보여주며 상담을 한다. 


한옥의 구조 변경과 소재에 따라 건축 비용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완성된 모습을 입체로 보여주니 건축주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아직도 달랑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계약서로 한옥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목수는 20여 공정으로 세분화된 상세 견적서 및 계약서를 제시하여 건축 시나 건축 후에 분쟁의 여지가 없도록 체계를 갖춰 일한다.

 

정목수는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이제는 하늘길도 많이 날아다닌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림집과 절집을 짓고 문화재 보수를 하던 정목수는 몇 년 전부터 세계로 한옥을 지으러 다니고 있다. 미국에서의 한옥 건축을 위해서는 미국과 캐나다의 시장조사를 하였고,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한국정원을 조성했으며 베트남 퀴논시에서는 정자를 짓고 추가공사를 협의 중에 있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한국을 K팝과 BTS의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건축물도 이렇게 아름답구나!'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한복의 저고리와 치마의 곡선처럼 기와지붕의 곡선은 외국인들의 눈에도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밖에 없다. 한옥은 세계 어느 건축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담고 있다. 정목수가 알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한옥을 수출하려고 전북대학교와 함께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전북대학교는 대학과 대학원에 한옥학과가 있고 한옥 목수 양성과정도 진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해외 수출을 할 수 있는 체계가 다 갖춰져 있는 유일한 대학교다. 아리한옥과 전북대학교가 손을 잡고 한옥을 세계로 수출하는 일은 산학협력의 모범 사례로 보인다.


정수목의 아내 김영희에게도 장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작고하신 아버지는 부산시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였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을 보고 자라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일찌감치 싹텄다. 그래서인지 안목이 남다르다. 특히 집을 꾸미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여기에 한옥식 인테리어를 병행하여 조화롭게 꾸민 집은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몸에 밴 탁월한 안목이 아리문화연구소에서 추진하는 여러 방면의 일에 반영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의 작가 김양오



장성 황룡행복마을 사람들


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의 작지만 진정한 행복. 거실문을 열면 파란 잔디에 아침 까치가 반갑다 인사하고, 우리집 마당에는 손녀딸의 태어남을 축복하는 기념 꽃나무 삼색병꽃이 참 예쁘기도 하다. 

파란 잔디에 뛰어놀 때면 그 무엇이 이 아이보다 이쁘고 행복을 주는가 싶다. 뽀송뽀송 햇볕에 말린 이불, 늦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 주렁주렁 열린 사과가 붉은 입술처럼 참 예쁘기도 하다. 행복은 내가 가진 게 많아서도 아니고, 큰 것을 이루기보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것. 


아침이면 마시는 은은한 커피 한 잔에 행복을 찾는다. 나를 따라서 사느라고 평생 수고한 아내에게도 그동안 수고했다고 ‘다독다독’ 위로도 하며 소확행을 찾는다. 


아리한옥에서 각각 개성 있고 멋들어지게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지인들과 오늘도 다과와 막걸리 한 잔, 파전에 별빛 쏟아진 행복마을에서 행복을 따뜻한 가슴으로 맞는다.


–이현수 건축주

 


저는 아리한옥이 건축한 한옥집에서 3년째 살고 있습니다. 한옥에서의 삶을 너무도 행복해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저 또한 행복합니다. 가끔씩 집에 들러 불편한 건 없는지 챙겨주시는 도편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을 주고 믿음을 주는 아리한옥에 감사합니다.


-변동선 건축주

 


까치는 열심히 나뭇가지와 볏짚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힘든 줄 모르고 집을 짓는다. 사람이 집을 짓는 것도 이들 미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목숨이 길고 짧음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집을 짓는 이유는 처자식과 후손을 위해서다. 나의 꿈만 같은 집, 가족 모두 만족해하며 살고 있는 장성의 황룡행복마을(한옥마을) ‘아리한옥 3호집’에서 멋진 꽃과 함께 웃음 가득 행복 충만입니다.


-강창원 건축주

 


자연을 벗 삼아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살고자 하는 남편의 오랜 바람과 열망이 이루어져, 이곳 장성 황룡행복마을에 소통의 소통을 거듭한 결과 멋진 보금자리 ‘5호집’으로 둥지를 튼 지도 벌써 만 2년이 되어갑니다. 지금 우리집 마당에는 장미가 한창입니다. 남편이 살뜰히 살피는 홍가시, 호랑가시도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운명이 있다고 했던가요? 너무나 운이 좋게도 ‘아리한옥’의 정사장님, 김이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고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체크해주시고 꼼꼼히 챙겨주시고 배려해주신 아리한옥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황룡강 주변의 화려한 꽃들을 무대 삼아 우리 부부는 자연과 어우러지고 이웃과 소통하며,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영희 건축주

 



꿈꾸던 

한옥 살림집에서 살다


저는 서울에 올라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거처할 한옥집을 짓고자 알아보던 중 장성 한옥마을에서 정진영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일 년 반에 걸친 꼼꼼하고 세심한 상담을 통해 설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옥의 중심이 되는 좋은 목재를 구입하고 완공에 대한 기대를 하였습니다. 대표님과 목수님들 외 여러분들의 숙련된 기술과 노고 덕분에 웅장한 대들보, 아름다운 처마의 곡선과 실용적인 실내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꿈에 그리던 한옥집을 안전하게 건축해주신 아리한옥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여 장진아 건축주



 


안녕하세요. 한옥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여러분! 

우리 가족은 전남 구례에서 아주 멋진 한옥집에 살고 있습니다. 2년 전 정진영 사장님을 만나 신뢰를 느꼈고, 마음이 닿아서 바로 계약까지 갔습니다. 사장님은 한옥에 대한 애정이 깊고, 장인정신이 몸속 깊이 새겨져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리한옥,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속에 한옥을 많이 많이 지어주세요.


-구례 이미현 건축주



제가 귀촌을 하게 된 이유는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아파트 생활을 했기에 직접 집을 짓는다는 고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촌 후에는 큰 고민이 되었지요. 아내의 건강을 위해 평생 살 집을 지어야 하기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때마침 같은 시기에 친구도 집을 짓는다기에 함께 공부하며 여러 곳의 현장 방문도 해보았습니다. 


콘크리트집, 벽돌집, 황토집, ALC집 등등... 친구와 저는 최종적으로 ALC집을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시공사 대표가 젊었고 무척 정열적으로 보였습니다. 견적도 끝냈고 계약금만 지불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는 후배가 정진영 목수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한옥 목수인데 문화재 보수를 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목수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사실 한옥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평생 살 집이니까요. 친구와 저는 ALC집의 최종 계약 전 정진영 목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 업체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ALC집 대표는 무조건 친구집과 우리집의 계약을 따는 게 목적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목수는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며, 그 모습에서 자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고민 끝에 친구는 ALC집으로, 저는 정목수의 진정성을 보았기에 한옥으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친구집과 우리집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목수는 매일 집 짓는 현장에 있었고, ALC집 대표는 가끔씩 방문한다며 친구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또한 정목수와 현장 직원들은 즐겁게 일을 하면서도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반면 친구는 그 대표와 일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만이 이어졌습니다. 계약 전에는 집주인이 갑이고 계약금 지불 후에는 을이 된다는 이야기가 친구에게 해당되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인 정목수를 비롯하여 직원들까지 직업의식이 투철했고, 직원 모두가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신뢰감이 쌓여갔습니다. 


대형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어도 입주 전 사전점검일이 있습니다. 미비된 것들을 입주자가 체크하라는 의미죠. 그리고 살다보면 대형 건설사라도 A/S가 발생됩니다. 한옥도 목재가 주재료여서 사소한 A/S가 발생됩니다. 진정한 장인은 A/S 발생 때 알 수 있더군요. 정목수는 집을 짓기만 하는 게 아니고 사후처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A/S를 해주었습니다. 반면 친구네는 A/S가 발생이 되었는데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아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법적조치도 고려하고 있더군요. 친구는, 그때 강력하게 정목수를 택하게 하지 않았다고 지금도 제게 말합니다. 아리한옥에 대하여 추천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있습니다. 저는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편히 살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진영 대표와 아리한옥 관계자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구례 이천일 건축주

 

 

 

 



한옥 관련사업의 

새지평을 열어 갈 것임을 믿습니다. 

따뜻한 봄날, 그 동안 한옥의 다양한 현장 경험을 축적하고 연구에도 힘써온 정진영 도편수가 대표로 있는 '아리한옥'이 새롭게 출발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한옥 건축과 문화재 보수 전문회사인 ‘아리한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정진영 도편수는 현재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산학협력으로 한옥 수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마다하지 않고 강의를 맡아주었고, 명쾌하고 확실하게 가르쳐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수출에도 주력하여 해외 현지에서 한옥을 직접 시공하고 있습니다.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가 한옥특성화 캠퍼스로 발을 내디딜 때부터 같이 고생해 왔기에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사업확장을 응원합니다. 


제가 아는 정진영 도편수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보통, 건축주가 집 한 채를 지으면 10년이 늙어버리고 시공한 분과도 원수가 된다고들 얘기합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가 건축한 한옥마을에서는 건축주들이 공사가 끝난 다음에도 매월 모임을 가지며 감사한 마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진영 도편수는 지금까지 쌓인 기술과 성과를 바탕으로 '아리한옥'을 통하여 국내에 이어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만들어 한옥 관련사업의 새지평을 열어갈 것임을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전북대학교 한옥건축학과 남해경 교수



‘아리한옥’ 도편수 정진영,
“목수는 천직이다”

도편수는 한옥 건축 현장의 총책임자다. 터닦기부터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다 알아야 하고 나무, 돌, 기와 같은 전통적 소재뿐 아니라 신소재도 잘 다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주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건축주가 원하는 집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리한옥 정진영 대표 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도편수다. 


어느 문화재 보수 현장, 마루 밑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득득득득’ 혼자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정목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아내 김영희가 묻는다. “땅을 왜 파십니까?” 정목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뜸을 들이다가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땅? 파라니까 파죠.” 


아리한옥 유튜브 영상을 보는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이 짧은 대화가 전부인 영상에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두 사람과 이웃 동네에 살고 있으며 그의 아내인 김영희의 친구다. 그들이 남원으로 이사를 오고 이제 5년 차 친구지만 매우 가깝게 지내어 두 사람의 분위기를 잘 안다. 나는 정진영 대표를 ‘정목수’라고 부른다. 여러 직함이 있지만 목수를 가장 좋아한다길래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 김영희는 정목수로 사는 남편을 늘 지지하고 응원하며 최근에는 문화연구소를 열었다.


사실 정목수는 외국계 큰 기업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한 ‘정과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돈과 명예’가 그의 목표였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일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 경남 하동까지 내려온 중심에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 김영희는 30대 초반에 어린 딸을 데리고 경남 하동으로 먼저 내려갔다. 귀촌하자는 아내에게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고 했던 그였는데, 어느 날 영화 ‘아웃 오브 슈미트’를 보고 생각을 바꿨단다. 회사 임원이 되어 돈과 명예를 얻어도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동은 섬진강의 하류라서 모랫벌과 농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으며 벚꽃길과 재첩국으로 유명하고 귀농지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정목수 부부는 저렴한 농가주택을 보금자리로 구입했는데 집을 처음 본 순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단다. 집을 수리하려고 천장을 뜯자 쥐똥이 서 말이나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시골살이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남편은 일당 5만 원짜리 목수의 보조일을 시작했고, 아내는 딸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녹차밭이 많은 곳이니 찻잎도 따러 다니고 직접 차도 만들어 판매도 하고 식당일도 거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목수일, 그런데 정목수는 그 일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뒷간목수’로 불리는 목수였다. 그의 유전자 어딘가에 망치질 소리, 자귀질 소리가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당 5만 원으로는 한 가족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목수들의 공동 숙소 한쪽 구석에서 이어폰을 끼고 독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술과 담배의 유혹도, 텔레비전의 유혹도 뿌리치고 오롯이 책 속에 파묻혔다. 그 결과 ‘문화재수리기능자(대목)’라는 자격증을 따냈고 일당 15만 원짜리 목수가 되었다.

 

그 후 도목수를 거쳐 도편수가 되었고 2017년에는 주식회사를 차렸다. 정대표는 3D 프로그램도 독학으로 익혔다. 현장 방문 시 건축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3D 도면을 보여주며 상담을 한다. 


한옥의 구조 변경과 소재에 따라 건축 비용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완성된 모습을 입체로 보여주니 건축주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아직도 달랑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계약서로 한옥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목수는 20여 공정으로 세분화된 상세 견적서 및 계약서를 제시하여 건축 시나 건축 후에 분쟁의 여지가 없도록 체계를 갖춰 일한다.

 

정목수는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이제는 하늘길도 많이 날아다닌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림집과 절집을 짓고 문화재 보수를 하던 정목수는 몇 년 전부터 세계로 한옥을 지으러 다니고 있다. 미국에서의 한옥 건축을 위해서는 미국과 캐나다의 시장조사를 하였고,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한국정원을 조성했으며 베트남 퀴논시에서는 정자를 짓고 추가공사를 협의 중에 있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한국을 K팝과 BTS의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건축물도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한복의 저고리와 치마의 곡선처럼 기와지붕의 곡선은 외국인들의 눈에도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밖에 없다. 한옥은 세계 어느 건축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담고 있다. 정목수가 알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한옥을 수출하려고 전북대학교와 함께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전북대학교는 대학과 대학원에 한옥학과가 있고 한옥 목수 양성과정도 진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해외 수출을 할 수 있는 체계가 다 갖춰져 있는 유일한 대학교다. 아리한옥과 전북대학교가 손을 잡고 한옥을 세계로 수출하는 일은 산학협력의 모범 사례로 보인다.


정목수의 아내 김영희에게도 장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작고하신 아버지는 부산시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였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을 보고 자라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일찌감치 싹텄다. 그래서인지 안목이 남다르다. 특히 집을 꾸미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여기에 한옥식 인테리어를 병행하여 조화롭게 꾸민 집은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몸에 밴 탁월한 안목이 아리문화연구소에서 추진하는 여러 방면의 일에 반영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의 작가 김양오


장성 황룡행복마을 사람들

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의 작지만 진정한 행복.

거실문을 열면 파란 잔디에 아침 까치가 반갑다 인사하고, 우리집 마당에는 손녀딸의 태어남을 축복하는 기념 꽃나무 삼색병꽃이 참 예쁘기도 하다. 파란 잔디에 뛰어놀 때면 그 무엇이 이 아이보다 이쁘고 행복을 주는가 싶다. 뽀송뽀송 햇볕에 말린 이불, 늦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 주렁주렁 열린 사과가 붉은 입술처럼 참 예쁘기도 하다. 행복은 내가 가진 게 많아서도 아니고, 큰 것을 이루기보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것. 


아침이면 마시는 은은한 커피 한 잔에 행복을 찾는다. 나를 따라서 사느라고 평생 수고한 아내에게도 그동안 수고했다고 ‘다독다독’ 위로도 하며 소확행을 찾는다. 아리한옥에서 각각 개성 있고 멋들어지게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지인들과 오늘도 다과와 막걸리 한 잔, 파전에 별빛 쏟아진 행복마을에서 행복을 따뜻한 가슴으로 맞는다.


-이현수 건축주

 


저는 아리한옥이 건축한 한옥집에서 3년째 살고 있습니다. 한옥에서의 삶을 너무도 행복해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저 또한 행복합니다. 가끔씩 집에 들러 불편한 건 없는지 챙겨주시는 도편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을 주고 믿음을 주는 아리한옥 에 감사합니다.


-변동선 건축주

 


까치는 열심히 나뭇가지와 볏짚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힘든 줄 모르고 집을 짓는다. 사람이 집을 짓는 것도 이들 미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목숨이 길고 짧음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집을 짓는 이유는 처자식과 후손을 위해서다. 나의 꿈만 같은 집, 가족 모두 만족해하며 살고 있는 장성의 황룡행복마을(한옥마을) ‘아리한옥 3호집’에서 멋진 꽃과 함께 웃음 가득 행복 충만입니다.


-강창원 건축주

 



 


 







자연을 벗 삼아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살고자 하는 남편의 오랜 바람과 열망이 이루어져, 이곳 장성 황룡행복마을에 소통의 소통을 거듭한 결과 멋진 보금자리 ‘5호집’으로 둥지를 튼 지도 벌써 만 2년이 되어갑니다. 지금 우리집 마당에는 장미가 한창입니다. 남편이 살뜰히 살피는 홍가시, 호랑가시도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운명이 있다고 했던가요? 너무나 운이 좋게도 ‘아리한옥’의 정사장님, 김이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고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체크해주시고 꼼꼼히 챙겨주시고 배려해주신 아리한옥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황룡강 주변의 화려한 꽃들을 무대 삼아 우리 부부는 자연과 어우러지고 이웃과 소통하며,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영희 건축주

 




꿈꾸던 한옥 살림집에서 살다

 

저는 서울에 올라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거처할 한옥집을 짓고자 알아보던 중 장성 한옥마을에서 정진영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일 년 반에 걸친 꼼꼼하고 세심한 상담을 통해 설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옥의 중심이 되는 좋은 목재를 구입하고 완공에 대한 기대를 하였습니다. 대표님과 목수님들 외 여러분들의 숙련된 기술과 노고 덕분에 웅장한 대들보, 아름다운 처마의 곡선과 실용적인 실내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꿈에 그리던 한옥집을 안전하게 건축해주신 아리한옥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여 장진아 건축주



 


안녕하세요. 한옥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여러분! 

우리 가족은 전남 구례에서 아주 멋진 한옥집에 살고 있습니다. 2년 전 정진영 사장님을 만나 신뢰를 느꼈고, 마음이 닿아서 바로 계약까지 갔습니다. 사장님은 한옥에 대한 애정이 깊고, 장인정신이 몸속 깊이 새겨져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리한옥,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속에 한옥을 많이 많이 지어주세요.


-구례 이미현 건축주

 



제가 귀촌을 하게 된 이유는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아파트 생활을 했기에 직접 집을 짓는다는 고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촌 후에는 큰 고민이 되었지요. 아내의 건강을 위해 평생 살 집을 지어야 하기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때마침 같은 시기에 친구도 집을 짓는다기에 함께 공부하며 여러 곳의 현장 방문도 해보았습니다. 


콘크리트집, 벽돌집, 황토집, ALC집 등등... 친구와 저는 최종적으로 ALC집을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시공사 대표가 젊었고 무척 정열적으로 보였습니다. 견적도 끝냈고 계약금만 지불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는 후배가 정진영 목수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한옥 목수인데 문화재 보수를 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목수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사실 한옥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평생 살 집이니까요. 친구와 저는 ALC집의 최종 계약 전 정진영 목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 업체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ALC집 대표는 무조건 친구집과 우리집의 계약을 따는 게 목적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목수는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며, 그 모습에서 자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고민 끝에 친구는 ALC집으로, 저는 정목수의 진정성을 보았기에 한옥으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친구집과 우리집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목수는 매일 집 짓는 현장에 있었고, ALC집 대표는 가끔씩 방문한다며 친구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또한 정목수와 현장 직원들은 즐겁게 일을 하면서도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반면 친구는 그 대표와 일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만이 이어졌습니다. 계약 전에는 집주인이 갑이고 계약금 지불 후에는 을이 된다는 이야기가 친구에게 해당되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인 정목수를 비롯하여 직원들까지 직업의식이 투철했고, 직원 모두가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신뢰감이 쌓여갔습니다. 


대형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어도 입주 전 사전점검일이 있습니다. 미비된 것들을 입주자가 체크하라는 의미죠. 그리고 살다보면 대형 건설사라도 A/S가 발생됩니다. 한옥도 목재가 주재료여서 사소한 A/S가 발생됩니다. 진정한 장인은 A/S 발생 때 알 수 있더군요. 정목수는 집을 짓기만 하는 게 아니고 사후처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A/S를 해주었습니다. 반면 친구네는 A/S가 발생이 되었는데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아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법적조치도 고려하고 있더군요. 친구는, 그때 강력하게 정목수를 택하게 하지 않았다고 지금도 제게 말합니다. 아리한옥에 대하여 추천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있습니다. 저는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편히 살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진영 대표와 아리한옥 관계자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구례 이천일 건축주




목수의 능력만큼 건축주의 안목도 중요합니다.

안목을 지닌 건축주는 훌륭한 목수를 알아봅니다.

 

‘아리한옥’은 인연을 소중히 여깁니다.

‘아리한옥’은 준비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리한옥 | 대표 정진영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태봉로 361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 한옥박물관 304호
063.562.9871  /  010.7192.9871
www.rehanok.com
rehanok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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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문화연구소 김영희 소장

worldamiii@naver.com
@COPYRIGHT 2023 REHANOK.  ALL RIGHTS RESERVED.






(주)아리한옥 | 대표 정진영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태봉로 361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 박물관 304호

063.562.9871 / 010.7192.9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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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문화연구소 김영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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